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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남북 『심청전』으로 보는 세상 세 번째 키워드는 관음사 2017-08-13 23: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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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심청전으로 보는 세상 세 번째 키워드는 관음사  

 

대웅전은 고려 시기인 970년에 세운 관음사의 기본 건물이다. 관음사에는 이 밖에 관음굴과 승방, 그리고 고려시기에 세운 7층탑이 있다. 관음사 대웅전은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문살로 하여 이채를 띠며 선조들의 건축예술의 재능과 슬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개성 관음사 안내문 중에서

 

몇 년 전 개성에서 남북한전래동화구연대회를 연 적이 있다. 이 때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에서 물을 반병 받아 개성 관음사에 가지고 가 그 곳 물(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차가운 맛을 느끼게 한다)로 나머지 반병을 채우니 완전한 물병 하나가 되어 남북통일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했었다.

 

개성 관음사는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25호이다. 이 관음사는 970(고려 광종 21) 법인국사 탄문이 처음 세우고, 1393(조선 태조 1)에 고쳤으나 1477(조선 성종 8)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1646(조선 인조 23)에 복원하였다한다. 현재의 건물은 1797(조선 정조 21)에 중축한 것이며, 경내에는 대웅전, 승방, 7층탑, 관음굴이 남아 있다. 이 관음굴 입구에 있는 물이 이 행사에서 통일을 의미하는 물이 된 것이다.

 

개성 관음사 대웅전 문이 만들어 질 때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관음사 조성공사에 동원된 조각 신동(당시 11) ‘운나는 뒷문 왼쪽은 완성하고 오른쪽 장식물 조각에 열중하다 어머니가 임종할 시간이 되었다는 전갈을 받는다. 이에 어머니를 뵈려고 곧바로 하산하려 하였다. 그러나 공사가 늦어질 것을 우려한 관리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왼손잡이 운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죄책감에 도끼로 자신의 왼팔을 자른다. 결국 뒷문 왼쪽은 완성됐지만, 오른쪽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운나는 미리 완성 시켜 논 왼쪽문에 왼팔이 잘린 자신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는 애환이 서린 설화 한 도막이다.

 

눈을 돌려 우리나라 관음사에 대한 설화를 따라 가 보자.

관음사 연기설화라는 게 요즘 새롭게 부각 되고 있다. 이 설화에 의하면 심청전 설화의 근간을 이루는 대목이 종종 나타나 심청전의 원류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심청전의 배경설화로 자주 논의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설화로는 충청도 대흥현에 사는 처녀 홍장은 효성이 지극하여 맹인인 홀아버지 원량을 잘 봉양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홍법사 화주승 성공대사가 원량에게 시주를 청하자 원량은 딸을 보시하였다. 아버지의 보시를 따른 홍장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성공 대사를 따라다니다가 진나라 사신을 만나서 그들을 따라가기로 하고 진나라에서 그들이 가져온 보화를 받아 성공대사에게 시주하였다. 홍장은 사신을 따라 진나라로 가서 혜제의 황후가 되고, 관음상을 석선에 실어 백제로 보내니, 성덕이 이를 성덕산에 모시고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그 후 맹인 원량은 눈을 뜨게 되어 95세까지 잘 살았다한다.

 

여기서 잠시 심청전이 갖는 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심청전은 설화를 창극화한 판소리를 다시 소설화한 것이다. 이러한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은 청자들 즉, 민중에 의해 첨삭되는 것으로 구색을 갖추면서 발달해 온 것이 특징이다. 심청전의 전반부는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의 제물로, 후반부는 환생하여 왕비가 되어 눈을 뜬 아버지를 만나 행복하게 살 때까지인데, 이는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을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성 관음사 이야기, 충청도 관음사 이야기에서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똑 같이 전해 온다.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했다. “몸과 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함부로 자신을 학대함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이 해에 우리들의 몸가짐은 어떠한가? 자학 자살로 물들이는 그런 세상은 없었음 한다. 모두가 소중한 우리네의 자산이며 미래의 꿈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