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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울] 기고- 남북관계 소강상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움2018-08-07 21: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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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북관계 소강상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서울 통일교육위원>

남북문제에 관한 한 작은 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남북관계가 썩 매끄럽게 진척되는 것 같지 않아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는 평화를 위해 광폭 행보를 거듭했지만 남북정상회담 110일이 지난 지금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가을이 왔다‘로 결실을 보겠다는 것이 지지부진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가을에 남북 정상회담을 갖자는 것이 물건너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남북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미국이 개입하고. 미국의 조종을 받는 유엔 제재가 있고, 그에따라 속도가 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하겠다고 하면 저것이 걸리고, 저것 하겠다고 나서면 이것이란 제제요인이 작동한다. 여기에 북한이 우리 요구 수준을 따르지 못한 측면도 있다. 반대로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우리가 따르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을 것이다.

그중 우리 내부적으로 정통 관료들이 예전의 관성에 젖어서 상상력과 돌파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회의감도 든다.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감있게 능동적으로 미지의 길을 개척해나가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아니라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고, 그것은 법규와 내규와 관행이라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소극성이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회담을 통해 획기적인 북미관계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저항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 집단, 금융의 본산 월가, 세계여론시장을 좌우하는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견제를 당하고 있다.

트럼프는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워싱턴 정가에서 뼈가 굳은 사람이 아니다. 바로 워싱턴의 이단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워싱턴의 정치 엘리트들과 맞서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뉴욕타임스든, 워싱턴포스트든, CNN이든 닥치는대로 언론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빨로 맞서고 있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는 미국의 질서에 의해 세계를 지배하는 그룹이다. 그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별 차이가 없다. 정도의 차이, 디테일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함께 공존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스타일 차이일 뿐이다. 기존 정치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 한때 우리 정치계에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는 미운 털이 박힌 정치인의 범주로 보면 된다.

트럼프는 정치자금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다. 미국의 대다수 정치 엘리트 그룹은 군산복합체로부터 들어오는 자금, 월가로부터 들어오는 자금, 각종 이익집단 로비스트로부터 들어오는 정치자금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차이가 없다. 언론환경도 기존 정치 엘리트들에 집중돼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힘이 나오고, 미국적 가치가 확산되었다.

트럼프는 이런 미국의 정치엘리트 그룹, 상류사회를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숫적으로는 대다수를 형성하지만 발언권이 낮은 백인 하류층이 그의 지지기반이다. 이들을 대변하다 보니 때로 미국의 정치 엘리트 그룹과 충돌한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가 언론, 금융, 군산복합체와 보폭을 함께 해온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언론, 금융, 군산복합체는 대체로 유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유대 출신들은 근본주의적이진 않지만 미국 보수를 대변한다. 이들은 보기에 따라 민주당에 주로 포진해있는 것같지만 공화당에도 적지 않은 수가 들어가 있다. 특히 언론과 금융은 이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미국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가 겁 없이 끼어들어 기존질서를 흩뜨려놓고 있다. 미국 언론과는 가히 내전을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남북문제에 관한 한 열려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정당이다. 하지만 크고 작은 전쟁 개입에서 보듯이 민주당 집권시절 전쟁이 더많이 일어나고, 공화당이 이의 뒷수습을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민주당의 겉포장을 보았을 뿐, 깊숙한 속살을 보지 못했다.

가까운 예로 민주당의 오바마 8년동안 공화당 출신 아들 부시가 분탕질한 남북문제, 북미관계를 해결하지 못했다. 중동정책에 방점을 찍었다고 하나 북의 핵 완성이 턱밑까지 왔다고 난리가 났는데도 방임하고 외면했다. 그 앞의 민주당 출신 클린턴 대통령 역시 전보다는 진일보된 관계를 보인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거기서 거기였다.

오히려 공화당의 닉슨 시절(1972) 7.4남북공동 성명이 나오고, 통일의 원칙으로,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공식 천명했다.

이는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문재인-김정은의 남북공동성명을 훨씬 뛰어넘는 담대한 성명이었다. 상호 중상. 비방. 무력도발 금지, 남북한간 제반 교류의 실시, 적십자회담 협조, 남북 직통전화 개설,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으로, 이것이 남북교류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46년 전 미 공화당 닉슨 대통령 집권시절 나온 남북관계다.

이런 가운데 미 공화당 출신 트럼프가 독특한 카리스마를 통해 북미관계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국내적 압박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북의 핵실험 가동이 어쩌니 저쩌니 보도되고 있다. 그것은 미국 네오콘의 제동적 발언일 수 있고, 미국 정부에서 북한 압박용으로 흘리는 정보일 수도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문제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네오콘들이 실패만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평화보다는 긴장을 원하고, 긴장보다는 전쟁을 부추기는 집단이다. 그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이익을 전제로 세상을 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담론은 신경쓰지 않고, 대결 대립을 앞세우고, 모함과 분열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종전협정에서부터 남북협력사업 등 장단기 대책을 강구해 의연히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단선적인 접촉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인력풀을 가동해야 한다. 미국의 여론시장은 다양하다. 특정 대상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중 언론대책이 시급하다. 언론을 활용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언론환경도 썩 우호적이지 않다. 상호 태생과 근본과 방향성이 다르니 그럴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은 구체제의 냉전사고에 젖어있다. 실수가 나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것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관료사회는 법규에 충실한 것 같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가 진척되지 않는다. 남북문제는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담대한 청사진이 요구되는데, 앞서 나가면 당장 저항에 부닥친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주하는 태도는 일을 안 하는 것과 같다. 근래 통일부가 조심스런 보폭을 유지하는 것 같은데, 옛 관성대로 가면 변화를 추동할 수 없다. 영혼 없는 자세로는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한 몸 다치지 않겠다는 조심성으로는 남북관계의 호기를 살려나갈 수 없다. 사명감과 용기와 헌신성이 요구된다.

청와대는 콘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기관과 유기적 소통과 정책 점검을 하고 있는가. 나태와 안주와 이완이 있으면 채찍을 가하고, 잘한 것은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지휘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다. 북한은 지도층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끌고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또 수십년씩 한군데서 일하는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들이 있다. 정권이 바뀌는 우리 사화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장단점이 있다. 다원성과 다양성의 결여가 자칫 교조주의로 흐를 수 있다. 남한사회의 다양한 의사 분출이 오히려 경직성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유연성을 배워야 한다. 자기 것만이 옳고 정당하며 반드시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고집부리고 억지를 부리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살피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지 않으면 반사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반평화세력이 기회가 왔다 하고 기뻐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대처해주기 바란다. 이는 우리나 미국이나 다른 외세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남북은 ‘평화가 밥’이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보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