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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울] 기고 - 이제, 남북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2018-08-21 17: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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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 남북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 서울 통일교육위원>​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 눈물어린 재회 장면을 보고 필자는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학자 사마천의 천도(天道)를 떠올렸다. 과연 하늘의 길이 있는가를 묻는 글이다.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 여자는 질을 봉쇄하는 형벌)을 받은 사마천의 절규라고 보면 될 것같다.

그는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간신배들이 인간을 모독하고, 권력을 농락한 자에 의해 백성들이 탄압받고 있는 현실에 진실로 하늘의 길이 있는지를 의심하며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하늘은 착한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도척(압제자, 또는 폭력자)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는데 종신토록 안락하고 부귀가 자손대대로 이어졌다. 이와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큰 길을 걷고 공명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하지 않고, 시종 정직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화를 당하는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가?

 

세계2차대전 시, 항독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독일의 게슈타포에 체포돼 처형된 프랑스의 실천주의적 사회학자 마르크 블로흐는 그의 저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아버지, 역사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라고 회의했다. 역사의 가르침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역하고, 인류를 모욕하는 오만과 광기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 역사의 진실이 내팽개쳐지고 역사의 오류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진실로 역사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교훈을 주지 못한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절규했던 글이다. 물론 역사의 효용성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법일 것이다.

 

역사는 박물관에 보관된 고문서가 아니다.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것이 역사다. 그래서 역사란 바로 현대사라고 하지 않던가.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고,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인류에게 부여하는 세상의  지침서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 모욕의 잔상을 금강산의 남북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만남을 보고 절감한다. 새삼 역사의 무용성을 느낀다. 저들이 무슨 죄를 졌길래, 무슨 못된 짓을 했길래 지금까지 피눈물을 쏟는가. 가족끼리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가슴을 쥐어뜯는 세월을 5년, 10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70여년 세월동안 피맺힌 한을 안고 비극적으로 살아가야 했는가. 그 사이 나이 많은 이는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나가셨다. 단지  착하기만 한 백성들이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정이 찢기고, 부모형제자매들이 흩어지고, 만나야 할 사람을 영영 만나지 못했다. 이것 하나를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만 했다.

 

돌이켜보자.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국가들이 분단되었다. 우리는 전범국가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분단되었다. 거기엔 일본이란 나라의 분탕질과 강대국의 분할통치 문제가 개입돼있지만, 지도자들이 외세에 휘둘리면서 극도의 분열과 대립상을 보인 우리 내부의 문제가 더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의 분단극복사를 보면 그것은 더욱 뚜렷하다. 히틀러 나치정권과 함께 전범국가가 된 오스트리아가 맨먼저 분단을 해소하고 1955년 영세중립국으로 독립했다. 적대적이었던 중국과 대만이 자유롭게 통행하고, 심지어 대만의 자본이 중국 본토에 투입되고, 뒤이어 베트남도 통일됐다. 가장 통일이 어렵다는 독일도 끝내  통일했다. 힘이 막강해지면 주변국이 불안하기 때문에 독일통일을 주변국들이 반대해왔는데, 통일을 이루고, 지금은 유럽연합을 리드하는 지도국으로 우뚝 섰다. 베트남 역시 철전지 원수 미국과 수교한 뒤 전사자 유해 송환에서부터 유해발굴, 고엽제 보상 등 협상을 타결하고, 지금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동남아 중심국이 되었다.

 

우리는 뭔가. 분단이란 이름아래 이익을 취한 세력들. 대결과 대립, 냉전 반북으로 세를 키우고, 그들끼리 권력과 부를 창출 확장하고, 군산복합체 외세에 기생해 단물을 빨아먹으면서 휴전선을 세계 최고의 긴장지대, 첨단무기의 대결장으로 끌고 갔다. 

물론 북한의 호전성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전쟁불사론, 선제타격론, 지도자 참수론이 나왔다. 미국이 대신 쳐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 북의 위협을 막기 위해 무기를 사들인다고 하면서 방산비리를 저지르고,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군림하며 한 세상 주물렀다. 외세와 함께 무기로 장난하는 그들이니 남북 화해나 평화에 의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 지난 70여년 체제를 유지해온 구정권의 스탠스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해당 민족의 인간학이다. 금강산 이산가족들의 눈물어린 재회를 보면서 왜 우리는 이리 못났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정치권이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제 시민의 힘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인간띠로 휴전선을 풀어야 한다. 같은 핏줄이 만나 눈물로 포옹하겠다는데 외세 운운하며 주춤거린다면 그것은 야만이고, 폭력이고, 반인권적 행태다. 헤어져 있는 가족을 만나겠다는데 누가 막는가. 선하기만 한 그들이 못난 정치를 만난 희생 아니겠는가.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려고 한 지도자들 때문이 아닌가.

 

사마천이 말한 天道의 패배주의, 마르크 블로흐의 역사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길을 정치가 열어주기 바란다. 통일을 달성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만남과 여행자들의 지유로운 통행만 보장해도 된다.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해 자성하면서 민족의 아픔을 해소하고, 웅비할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주체적이지 못할 때 외세는 늘 공작이라는 작업이 들어오게 되어있다.